재판절차

압류금지채권의 범위변경신청-3

애태타 2018. 8. 6. 15:42

이말년이라는 만화가가 있습니다. 이 분의 특징 중 하나가 분량조절을 잘 못해서 1화에 마무리하려고 했다가 3화, 4화까지 가게 된다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분량조절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저도 지금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설명은 하고 마무리를 지어야죠. 변호사들이야 결정문만 보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겠지만, 변호사가 아닌 분들은 잘 모를테니까요.


결정문에서 주문과 이유 부분입니다.





우선, 주문, 법원에서 압류액 중 일부를 취소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건 다들 아시겠죠?


다음, 이유입니다. 다섯 가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하나씩 설명드리겠습니다.


1. 이 사건 피압류채권의 성격


이 사건 결정이 나오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결정이유 중 제일 앞에다 쓴 것만 봐도 아시겠지요.


이 사건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주는 급여(이 사건 피압류채권이지요)는 사용용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들어가면 어렵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사건의 실제 당사자가 노출될 우려도 있는 만큼(그리고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제 장사 밑천이기도 하구요..),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주는 급여의 일정부분은 병원직원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병원이 가져가는게 아니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 피압류채권 자체가 임금채권은 아니지만, 적어도 직원에게 줘야 하는 부분은 임금과 같은 성질이 아니냐는 것이 저의 주장이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인 겁니다.


2. 그 채권이 신청인의 사업에 미치는 영향


위 1번에서 막 압류하기에는 좀 조심스러운 채권임을 인정했다면, 2번은 따라 나올 수 있습니다. 병원의 수입 중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기 때문에, 이걸 압류해버리면 다른 예산을 돌려서 병원직원에게 월급을 줄 수가 없게 되니까요. 게다가 다른 병원의 운영난 때문에 지금 이 병원도 문을 닫게 될 우려가 있는 거지요.


3. 신청인이 운영하는 병원의 특수성


이것도 이 사건 결정의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 병원은 공익성이 상당히 있는 병원이었거든요. 실제 이 사건 병원의 회계장부를 보면, 이윤을 남겨서 다른 데 투자하거나 한 내역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병원은 이 지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병원이기도 했죠.


4.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경제적 형편


실제로 이 사건에서 신청인, 그러니까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한 병원직원들은 체당금을 받기도 했고, 그냥 떼인 돈인데 받으면 좋은 돈으로 생각해서인지 적극적으로 추심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개별적으로 압류를 취소한 경우도 있었고, 배당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결국 더 급한 것은 직원이 아니라 병원이 아니냐는 점을 지적했던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도 법원에서 부분적으로 인정해 준 것 같습니다.


5. 현재까지 제3채무자가 지급보류한 총액


이 사건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압류된 돈을 병원에다 주지 않았는데 이미 그 액수가 전체 채권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전체 채권액보다는 모자랐지만, 적어도 압류된 채권만가지고도 직원들의 임금 및 퇴직금의 반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지요. 그렇다면, 압류의 일부를 취소하여도 직원들은 반 정도의 돈은 받을 수 있을테고, 굳이 병원을 힘들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A1병원은 다행히도 압류된 돈 중 일부를 받아서 병원은 운영해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갑돌이와 갑순이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건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길고 자세하게 설명드린 것은, 이런 결과는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빌린 돈은 갚아야 하고, 압류의 일부라도 풀어주는 것은 법적으로 정한 경우가 아니면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채무자의 딱한 사정이 있고, 법적으로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있다면, 법원에서도 채무자의 사정을 돌아봐주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려는 겁니다.


사족같지만, 변호사일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대한민국의 법원이 국민들의 기대에는 못 미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아무런 원칙없이 일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아무런 유도리(속어로 유도리지만, 이를 흔히 '구체적 타당성'이라고 표현합니다)를 두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법원이 일하는 방식을 모르고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해서, 그걸 반드시 알아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가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